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앙투아네트(베르사이유의 장미) (문단 편집) === 재판 싸움 === 국민 재판에 여러 번 회부되어 혁명 정부측이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실책부터 하지않은 짓까지 모조리 유죄로 몰아가는 것[* 폴리냑 부인 등을 비롯한 총신들과 사치를 부리며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것과 [[한스 악셀 폰 페르센|자신의 불륜남]]과 내통하여 [[바렌 사건|바렌느로 도주할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는 마리 앙투아네트조차 변명을 못하고 인정했지만 명백한 모함이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과 그외 다른 사건들까지 전부 마리의 죄로 몰아갔다.]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프랑스의 왕비로서 위엄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때 로잘리의 도움으로 자신을 찾아온 자르제 백작에게 탈출 제안을 듣지만 자녀들까지는 함께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탈출을 포기하며 자르제 백작에게 마지막까지 애써줘서 고맙다는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르제 백작에게 자신의 유품을 페르젠에게 전해주고 당신은 무사히 탈출하라고 부탁했다. 또한 외전에선 로잘리가 자르제 백작에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브레게의 시계를 원한다고 말하자 이때 자르제 백작은 아내의 유품인 시계를 준다.] 그렇게 지리멸렬한 싸움을 반복하던 중 급기야 자신을 확실하게 처형시키기 위해 [[자크 르네 에베르|에베르]]가 자신을 아들 [[루이 17세|루이 샤를]]과의 근친상간이라는 말도 안되는 혐의로 고발하고, 장래에 루이 샤를이 국왕이 되었을 때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한 음모가 틀림없다는 어이없는 이유까지 갖다 붙히며 매도하기에까지 이른다. 이때 아들이 자신에게 강간당했다고 거짓 증언한 것에[* 실제 역사에서도 [[루이 17세]]는 어머니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을 겁탈했다는 증언을 하면서 어머니의 처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누나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도 루이 17세의 사칭자들을 두고 '''부모를 죽인 죄로 총살시켜야 된다고''' 할 정도로 남동생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로 모자간의 근친상간이 있었던 건 아니고 당시 혁명정부측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확실히 처형시키기 위한 물증으로 가족들과 전부 떨어진 채, 독방에 수감되어 간수들에게 학대까지 받으면서 육체와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진 어린 루이 17세를 세뇌시켜 거짓 증언을 받아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결국 루이 17세 역시 부모와 고모의 처형 뒤에도 계속 탕플 감옥에 수감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학대를 당하다가 부모님이 처형된 지 2년만인 1795년에 고작 10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잠시 경악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아들과의 근친상간만큼은 모든 어머니와 여성에 대한 부끄러운 모욕이고, 적어도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이런 비열한 고발에 대답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마지막까지 왕비로서 위엄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하면서 근거도 없는 누명까지 씌우려는 국민의회에게 한방 먹인다.[* 이때 법정에서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는 에베르 저 멍청이가 왕비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조소하며 마리 앙투아네트를 극도로 증오하던 아낙네들마저 에베르에게 반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진 채로 진행되는 재판이었기에 결국 사형을 선고받지만 이미 여러 가지 일로 지쳐있던 마리는 이걸로 괴로움에서 해방된다고 안도하며 죽음을 받아들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